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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할 수 없는 곳, 살 수 없는 곳


우리집은 닭장 같은 곳에서 삶이다. 양 옆으로 도로가 있고 큰 도로 중간에 작은 섬처럼 구성된 마을이다. 산이라던지 강이라던지 큰 존재가 우리를 둘러싼 곳이 아니다. 이곳에서 나의 영혼은 나뭇가지에 달린 마지막 잎새처럼 늘상 떨림을 가지고 있다. 누군가에게 기대어 쉬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불안으로 피곤해하는 삶을 살고 있다. 매일 떨리면서 어떻게 사냐고? 그건 어렵지 않다. 이 불안에 익숙해져서 내가 불안하다는 사실을 다른 것으로 뒤덮으면 된다. 구린내를 향수로 덮듯이, 더러운 물건가지들을 소파 밑으로 넣어 밀듯이. 창문을 열면 바로 앞집의 큰 창을 통해 그들의 사는 모습이, 마치 우리집 거실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다. 자발적 교도소처럼 암막커튼은 어느 집이나 굳게 쳐져 열린 것을 본 적 없다. 아랫집은 자동차 청소 가게로 진공관에 공기를 흡입하는 소리가 아침이고 저녁이고 밤이고 언제든지 귀에 들려 뇌 중앙을 가로지른다. 앞 뒤 집이 지어진 간격 때문에 우리집엔 해가 잘 들지 않는다. 들어봤자 한 인치 정도? 창고형 냉장고처럼 우리집은 항상 춥고 움츠려들게 된다. 이 답답한 곳을 벗어나 자유로운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. 도로의 자동차 소리가 들리지 않고, 아래 집의 진공청소기 소리가 들리지 않고, 햇빛이 따뜻하게 잘 들고, 이웃과 교류가 많은 곳으로.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이 집이 우리 나라에서 땅값이 비싸기로 열손가락 안에 드는 동네라는 것이다. 사람들을 만날 때 어디 사는지 소개를 하면 다들 오~ 비싼 데에 사네요. 한다. 이 동네를 내적으로 혐오하는 내 마음도 모르고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쓴 웃음이 난다. 다들 이런 환경을 “좋다”고 느끼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다. 다른 이웃과 교류가 없어서 “쾌적”하고, 도로와 가까워서 출퇴근이 “용이”하다고 하고, 주변에 자연이 없는 대신 자동차, 도보 도로가 다 연결되게 일자로 깔려있어서 ”편리“하다고들 한다. 구불구불한 미로 같은 골목이 더 좋고, 사람 사는 냄새 느껴지고, 자동차 없이도 살 수 있는 작은 동네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최악인데 나는 여기 사는 것이 정말이지 힘들다. 가족이 아니었다면 살기 싫다.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가지 못한다. 야생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동물원 사자의 마음을 이젠 누구보다 잘 알 것 같다. 하지만 야생으로 돌아가더라도 예전과 달라진 나의 모습 때문에 고향 친구들과도 거리가 멀어졌다. 정말 중간지대에 방황하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. 살고 있는 곳은 사랑할 수 없고, 사랑하는 곳에선 살 수 없는 나의 모습이다.